영혼을 만지시는 그리스도

Posted at 2010/02/08 09:55 // in To Know God/daily life // by Jang.s
마 9:1-8
예수와 제자들은 다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예수의 고향으로 갔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들것에 실어 데려와서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그들의 담대한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기운을 내어라, 아들아.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 그러자 몇몇 종교 학자들이 수군거렸다. "아니, 저것은 신성모독이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왜 이리 수군수군 말이 많으냐?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쉽겠느냐? 내가 인자인 것과, 내가 어느쪽이든 행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겠다." 이 말을 하시고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거라. 네 자리를 들고 집으로 가거라." 그 사람은 그대로 했다. 무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하나님이 예수께 권한을 주셔서 자기들 가운데서 그렇게 일하신 것을 기뻐했다. (MSG)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십니다. 바로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교제하실 때 영적인 원리들을 드러내시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에서도, 수많은 병자들을 치료하던 일 중에서도, 오병이어의 기적 속에서도, 풍랑 가운데서도 단순히 현상만 고쳤던 것이 아니라, 영적인 곳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의 교제가 단순히 이 세상에만 국한된 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잊고 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즐거움을 가지겠지만 그것으로만 끝나선 안되고 모임이 마칠 때는 주님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를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도록 격려해 주며 헤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작은 우리의 몸의 욕구로부터 시작되겠지만 그 만남이 깊어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다루심 가운데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대원에서 만났던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교육 상담을 전공하셨습니다. 자기와 다른 상담가의 차이가 있답니다. 일반 상담가는 그냥 상담 이론만 실전에 적용시키지만 자신은 기도한답니다. 하나님 성령이 저의 상담을 통해 흘러가서 이 사람의 마음을 영혼을 만져주세요. 저는 이 모습이 우리 가운데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있는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되는 정체성, 영혼을 만지시는 성령님이 나를 통해 역사하시도록 기도하며 사는 모습 주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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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구원의 문제와 경제논리

Posted at 2010/02/06 16:53 // in To Know God/daily life // by Jang.s
마 8:28-34
가다라 지방에 일행은 미친 사람 둘과 마주쳤다. 그들은 묘지에서 나왔는데, 두 사람 모두 귀신의 피해자였다. 그들이 너무 오랫동안 그 지역을 공포에 몰아 넣었던 터라, 그 길로 다니는 것을 모두가 우험하게 생각했다. 그들이 예수를 보더니 소리질렀다. "무슨 일로 우리를 힘들게 합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당신은 아직 여기에 올 때가 아닙니다!" 저만치 멀리서 돼지 떼가 땅을 파헤치며 먹을 것을 찾고 있었다. 악한 귀신들이 예수께 애걸했다. "우리를 이 사람들한테서 내쫓으시려거든, 돼지들 속에 들어가 살게 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좋다. 여기서 나가거라!" 그러자 돼지들이 미쳐서, 우르르 벼랑으로 몰려가더니 바다에 빠져 죽었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혼비 백산하여 달아났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과 돼지 떼에게 벌어진 일을 마을 사람 모두에게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돼지 떼가 익사한 것에 화가 났다. 그들은 무리 지어 와서는, 예수께 그곳을 떠나다시는 오지 말라고 당부했다.(MSG)

영혼구원의 문제와 경제 논리는 부딪힐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그와 관련된 논쟁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돈이면 다른 것들 얼마나 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그런데 돈을 쓰면서 그런 일을 하는가?라는 비난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 바로 영혼 구원의 문제임을 볼 수 있습니다. 천금을 들이더라도 영혼 구원과 관련된 문제라면 아낌없이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경제논리와 효율성을 따집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은 경제학적인 효율성과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치는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앞에서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는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조차 내어 놓는 것이 소중하다는 가르침을 직접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신 예수님, 이 모습이 어찌 경제적 효율성과 상관이 있을까요?
사랑이 모든 것보다 중요하고 우선적인 가치임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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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평안 내 안에 있네

Posted at 2010/02/05 09:30 // in To Know God/daily life // by Jang.s

마 8:23-27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배에 오르셨고 제자들도 그분과 함께 있었다. 그러던 중에 풍랑이 무섭게 몰아쳤다. 파도가 배 안으로 들이치는데, 예수께서는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다급하게 그분을 깨웠다. "주님,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이러다가 빠져 죽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어째서 너희는 이토록 용기없는 겁쟁이란 말이냐?" 그러더니 일어나셔서 바람에게 잠잠하라, 바다에게 잔잔하라 명령하셨다. "잠잠하여라!" 바다는 고요한 호수처럼 되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눈울 비볐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바람과 바다가 그분의 명령에 복종하다니!" (MSG)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풍랑이 무섭게 몰아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기도하다가 주님께 집중하면 주님은 이상하게도 침착하시고 평안 가운데 계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럴 때 혼란이 생기죠. 나는 정신없어 죽겠는데, 주님은 그토록 잠잠하고 평안가운데 계시니!!! 그런데 그 주님을 바라보다 보면 내 마음속에 이상하게도 안정감과 평안이 찾아옵니다.
 제자들이 배 안에 주님이 곤히 주무시고 계시는 모습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면 밖의 풍랑이 무섭게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의 주관자 되시는데 배에서 주무신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배가 뒤집히거나 침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상황 가운데서 주님이 어떻게 계시는가를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황을 바라보고 계속 그것을 묵상하느니 주님의 얼굴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 주님의 평안이 우리를 감싸며 알 수 없는 힘이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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